"거울아, 거울아~ 이 세상에서 누가 가장 예쁘니?"
백설공주에 나오는 사악한 왕비의 단골대사다. 그녀는 왜 거울에게 물었을까?
<얼굴, 감출 수 없는 내면의 지도>를 읽고나니 얼굴 에 담긴 수수께끼를 푼 느낌이다. 결론은 아직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라는 것.
이 책에서는 그리스 신화 속에서 얼굴이 가진 상징과 다양한 가면의 세계, 거울이라는 상징적 관념 속 얼굴의 의미, 동서양 초상 미술의 역사, 현대 미술에 나타난 얼굴 등 다양한 관점으로 얼굴의 의미를 찾고 있다. 얼굴 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어떤 이야기를 하느냐를 통해 그 사람을 알 수 있는 것 같다.
만약 저자의 이력을 모른 채 이 책을 읽었다고 해도 다 읽고나면 알게 될 것이다. 한국 사람보다도 한국의 문화를 더 잘 알고 있는 듯하다.
벵자맹 주아노, 이 책의 저자는 인문학과 철학을 전공한 프랑스인으로 파견교사로 한국에 왔다가 서울에 매료되어 지금까지 서울에 살고 있다고 한다. 한국에 머물면서 한국어를 배우고 한국 문화에 관심을 갖게 되어 한국의 상상계 구조를 연구하기 위해 문화 인류학으로 전공을 바꿨다고 한다.
어쩐지 얼굴 이라는 주제가 이토록 심오한 학문의 세계와 맞닿아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덕분에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처럼 놀랍고 신기한 경험을 한 것 같다.
그동안 일차원적인 얼굴 만을 생각했다면, 벵자맹 주아노를 통해 다차원적인 얼굴 을 만나게 된 것이다.
우선 상상계 와 거울 단계 가 무엇인지를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다.
* 상상계[想像界, Imaginary ]
상상계는 상징계, 실재와 더불어 라캉 정신분석학의 세 기본 범주에 속한다. 특히 초기 라캉에게 상상계는 분열된 육체를 상상적으로 통합하는, 거울단계에서의 육체 이미지와 연관된 개념이다. 생후 6개월~ 18개월 된 어린아이는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지각하고 환호성을 지르면 반응한다. 이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관심을 보이지 않는 침팬지 같은 고등 포유 동물과는 다른 반응이다. 라캉에 따르면 거울에 비친 육체 이미지에 동일화함으로써 자아가 형성된다.이를 거울 단계 라고 한다.거울 이미지에 동일화함으로써 인간 주체는 자신을 전체적으로 경험, 파악하고 형성하지만, 이는 동시에 타자를 통한 자아의 형성이라는 소외의 과정이기도 하다.
"나는 타자이다." 그리고 나, 자아는 자신의 실재 를 망각, 오인함으로써 형성된다.
- 출처, 네이버 문학비평용어사전
우리는 매일 거울을 통해서 자신을 본다. 거울 없이는 자신의 얼굴을 볼 수 없다. 백설공주에 나오는 사악한 왕비는 동화 속 악역이 아니라 바로 우리 자신인 것이다. 거울을 통해서만 자신의 아름다움과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다. 이때 거울은 타인에 의해서 규정된 사회적 이미지, 자아상을 의미한다. 거울을 통해 보는 이미지는 만들어진 환상이며 얼굴은 자신으로부터 단절된 가면이 된다.
근래 SNS를 통해 자신의 사진을 올리는 일이 일반화된 것 같다. 우리는 이미 다른 이들에게 보이고 싶은 자신의 모습을 선택하는 방법을 배운 것인지도 모른다. 중요한 건 가면의 나를 개인의 나와 혼동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인류학자 조들레와 모스코비치는 "몸은 타인에 의해 규정되는...... 자아실현의 도구"라고 말한다. 이 도전적인 정의는 특히 얼굴에 적용이 가능할 것 같다. (137p)
얼굴은 사회 생활을 위한 일종의 가면이다. 현대 사회은 규격화된 가면을 요구하고 있는 것 같다. 어떤 이들은 새로운 가면으로 바꾸기도 하는데, 한 번 바꾸게 되면 점점 더 가면을 의식하게 되고, 가면 속 자아를 잊어버릴 위험이 크다. 부디 가면에 현혹되지 말기를.
얼굴 을 통해 본 내면의 지도, 처음에는 낯설었지만 점점 알게 될수록 흥미롭고 매력적인 발견이었다.
눈, 코, 입, 머리가 있다고 다 얼굴일까?
얼굴, 육체와 상상이 만나는 특별한 공간!
공자는 효경 에서 ‘신체발부수지부모(身體髮膚受之父母)’라 했다.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몸을 소중히 하라는 것이다. 하지만 요즘은 그런 가르침이 무용지물이 되었다. 오히려 개인의 행복을 위해 얼굴에 손을 대는 게 자연스럽다. 나와 사회와의 소통, 나와 집단과의 관계 설정에 따른 다양한 얼굴 변형이 아니라, 오로지 이기적 욕망에 사로잡혀 생존의 질을 높이기 위해 거리낌 없이 얼굴에 칼을 대는 것이다.
얼굴은 왜 이런 역사를 갖게 되었을까? 신비롭고 두렵기만 했던 자연이 과학의 힘으로 하나씩 벗겨지고, 그에 따라 사회제도가 발전되고, 거기에 대응하는 인간의 생각과 생활방식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저자는 얼굴은 창조적 상상력의 산물일 뿐만 아니라 새로운 이미지의 바탕이 되며, 모든 사회에서 발견되고 또 수많은 제도와 유행, 사상 등에 그 형태를 부여하는 위대한 인간의 상징 이라고 했다. 다시 말해 인류가 급격한 변화를 겪을 때마다 그 참모습은 먼저 인간의 얼굴에 나타난다. 따라서 얼굴에는 사회와 집단 그리고 개인의 역학 관계가 고스란히 담겨 있어, 얼굴에 대한 성찰은 다른 어떤 연구보다 인간 사회를 가장 정확히 들여다볼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우리가 얼굴에 상상력이란 잣대를 들이밀며 고찰해야 하는 이유다.
의학 기술의 발달에 힘입어 성형하는 게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데 왜 굳이 얼굴의 참모습을 다시 화두로 삼아야 할까? 그것은 세상을 만들어가는 모든 제도가 점점 비인간화되어 가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성을 회복하는 출발점은 바로 우리 인간 본연의 얼굴을 되돌려주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우리가 얼굴을 대하는 방식이야말로 우리가 인간으로서의 우리 자신을 어떤 태도로 대하는지를 보여주는 표지이기 때문이다. 눈, 코, 입, 머리가 모여 있다고 해서 우리는 그걸 모두 얼굴이라고 하지 않는다. 얼굴을 얼굴이게끔 하는 것들, 그 철학적이고도 역사적인 심오한 세계가 이 책에 펼쳐져 있다.
들어가는 말 _ 얼굴 너머의 얼굴
1부. 신화 속의 얼굴에서 인간의 가면까지
01 얼굴은 눈, 코, 입, 귀, 머리의 집합체
얼굴 자체가 상징은 아니다|눈, 빛으로 세상을 보는 곳|코, 냄새로 세상을 맡는 곳|입, 숨 쉬고 빨아들이고 먹는 곳|귀, 말과 말의 힘을 받아들이는 곳|머리, 가장 높은 곳에 있는 곳|얼굴은 상징이 모인 조각보
02 그리스 신화 속 얼굴의 상징
페르세우스의 모험|메두사 얼굴의 진실
03 가면, 인간이 걸친 최초의 얼굴
영혼을 되살리는 원시 사회의 가면 |그리스 가면의 양면성
04 가면과 얼굴의 이중주
디오니소스 숭배가 연극으로 탄생하다|감정, 드러내거나 감추거나|서양 가면과 하회탈의 공통점|광대가 벗긴 가면 속의 얼굴
05 다양한 가면의 세계
얼굴을 가리기 위한 가면|존재를 드러내기 위한 가면|보호하기 위한 가면
2부. 얼굴의 참모습 들여다보기
01 유교 사회가 버린 변강쇠
한국판 고르곤 형상들|변강쇠 이야기|변강쇠와 페르세우스의 차이|변강쇠의 거세가 상징하는 것|질서를 깨려는 그들에게 내린 저주
02 거울, 얼굴에 대한 의식을 바꾸다
거울 없는 사회에서 나는 누구?|타인에 의해 나는 만들어진다|나는 거울을 본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03 가면의 나에서 개인의 나로
역사와 사회가 만든 ‘자아’ 개념|혼자 있을 때 얼굴은 없다
04 복잡한 얼굴의 세계
얼굴아, 얼굴아, 너 진짜 뭐니?|얼굴, 인간성을 증명하다
3부. 초상화에서 사회적 통제까지
01 미술은 얼굴을 어떻게 다루었나?
얼굴은 미술의 금기|예수의 얼굴도 상상의 대상인가?
02 동서양 초상 미술의 역사
동양 미술, 개인에서 가족으로|서양 미술, 이콘에서 자화상으로
03 얼굴 통제와 형식 부여
골상학이 앗아간 얼굴|과학으로 자행된 얼굴 말살|부르주아에게 얼굴을 부여하다|가면의 귀환
4부. 얼굴 훼손과 현대적 상상
01 현대 미술에 나타난 얼굴
미술과 영화에서의 얼굴 훼손|결코 평범하지 않은, 극단적인 얼굴들
02 얼굴 가치의 회복을 위하여
전쟁, 얼굴의 환상을 파괴하다|주체의 파멸|점점 더 일그러지는 얼굴|잃은 것은 정신적 가치
나가는 말 _ 얼굴의 신비
참고문헌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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