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별세계 사건부


표지의 부제에 먼저 더 시선이 끌렸다. 조선총독부, 토막살인 . 별세계 사건부 라는 제목으로는어떤내용의작품일지 영 가늠이 되지 않았는데 부제를 보는 순간대략의 내용을 짐작할 수 있었고, 조금씩 읽어갈 수록 그 짐작은 거의 적중이 됐다.아쉬웠다. 김이 빠졌다고 할까. 추리작품을 읽는 독자로서는 자신의 짐작이 빗나갈 때에도 쾌감을 느끼고, 심지어는 빗나가길 기대하며 읽는 법인데. 그래서 정명섭의 추리소설이 아닌정탐 소설이라고 표지에 적은 것일까.끔찍한 시체가 발견됐다. 발견된 장소는 완공을 열흘 남짓 앞두고 있었던조선 총독부 안이었고,피살자는 총독부 건축과 직원인 조선인 이인도였다.이인도의 시체는 머리, 몸통, 팔다리로 토막난 채 여섯군데에 버려진 상태였다. 끔찍하고 참혹했다. 이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등장한 인물은 게이오대 출신의수재 류경호. 최남선이 운영했던 시대일보 를 거쳐 지금은 잡지 별세계 기자로, 총독부 낙성식 전까지비공개리에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 조건이었다.일본인 입장에선 조선총독부가 완성되는 경사를 앞두고 이런 참혹한 일이 벌어졌다는 것을 감추고자했고, 이 사건에 류경호를 끌어들인 최남선은 이일을 빌미로 총독부 안에서 근무하는 조선인들이 쫓겨나게 될까봐, 류경호에게 사건 해결을 부탁한 것이었다.또 한 명의근대적탐정이 등장했다. 류경호. 역시 다른 탐정과 마찬가지로 머리가 비상한 수재인데다 기자라는 이성적이고 분석적인 직업을 가진 인물이었는데, 그런데 캐릭터가 그다지 매력적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예리하다기 보다는 차분하고 침착하다는 느낌이라 그래서였을까.류경호보다 오히려 보조적 인물이고 그다지 등장하지 않은 최남선에 시선이 더 끌릴 정도였다.거기에 스토리도 충분히 짐작이 가능한데다 캐릭터마저도 차분하니,전개도 정석적으로 한단계씩 진행된다보니 작품이 전체적으로안정감은 있었지만 반면에탐정물로서는 긴장감이 떨어졌다.조선총독부는 일제의 조선 식민치 통치체제의 완성을 의미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 건물만큼이나 견고하게 구축된 일제의 지배. 최남선은 말하고 있었다. 일제 지배에서 벗어나기 위해 교육에힘쓰고전문적인 실력을 키워야 한다고. 그는 언론사사주로 일제에 협조하는 한편 조선인들을 지키는 줄타기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내가 놀랐던 것은 정명섭작가의 쉼없는 집필활동이었다. 이렇게 다작을 하고 있으니. 사료가 필요한 시대를 배경으로 한 작품들을 주로 내놓은지라 언제 그 많은 자료를 섭렵하는지 궁금할 정도였다. 참으로 부지런한 작가라 아니할 수 없다.
역사 추리의 새로운 반향
적패 명탐정의 탄생 정명섭의 경성 정탐소설

정명섭 작가를 하나의 단어로 수식하기란 쉽지 않다. 역사 추리소설 적패 , 좀비를 소재로 한 논픽션 좀비 제너레이션 , 역사 인문서 조선의 명탐정들 , 장편 창작동화 사라진 조우관 등 그 누구보다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여주며 작가로서의 입지를 다져왔으며, 집필 외에도 소위 좀비 장르물의 전문가로 혹은 강사, 답사가로 출판계는 물론 방송, 학회를 종횡무진 오가며 활약 중이다. 장르문학계에서는 드물게 전업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정명섭 작가는 자신의 시작점이자 뿌리라고 할 수 있는 장르소설에 대한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오랜 준비 끝에 장편소설 별세계 사건부: 조선총독부 토막살인 (이하 별세계 사건부 )을 출간, 작가로서의 새로운 전환을 맞이하게 되었다.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면서도 작가가 꾸준히 추구해온 점, 즉 역사의 이면을 포착하고 그 안에 숨겨진 이야기를 그만의 방식으로 끄집어낸다는 일관된 정신이 빛을 발하는 이 작품은 흉내 낼 수 없는 깊이와 재미까지 더했다.

추리소설 이전의 명칭인 ‘정탐소설(偵探小說)’로 불리길 바란다는 별세계 사건부 는 일제 강점기의 경성을 배경으로 실존 인물과 가상의 인물이 함께 등장하여 그 현실성을 더한다. 통속잡지 ‘별세계’ 기자 류경호의 ‘사건수첩’에 담긴 이야기를 의미하는 ‘별세계 사건부(別世界事件簿)’는 평소 다양한 역사적 편린에 관심이 많았던 작가가 우연히 접한 실존 취미잡지 별건곤 에서 영감을 받아 집필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언론인이자 작가인 육당 최남선, 조선총독부에 근무, 화신백화점을 설계한 박길룡 건축사, 근대 일본의 대표적인 언론인이자 A급 전범인 도쿠토미 소호 등 역사적 인물들과 함께 이 작품의 또 다른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조선총독부 청사의 당시 모습이 손에 잡힐 듯 생생하게 묘사된다. 독자는 시공을 뛰어넘어 개방과 억압, 자유와 환락, 그리고 곰방대를 든 한복 차림의 노인과 말쑥한 정장을 차려입은 모던 보이가 공존하는 경성 거리를 등장인물들과 함께 활보할 수 있을 것이다.


1. 1926년 9월 22일 수요일, 경성
2. 1926년 9월 23일 목요일, 경성
3. 1926년 9월 24일 금요일, 경성
4. 1926년 9월 25일 토요일, 경성
5. 1926년 9월 26일 일요일, 경성
6. 1926년 9월 27일 월요일, 경성
7. 1926년 9월 28일 화요일, 경성
8. 1926년 9월 29일 수요일, 경성
9. 1926년 9월 30일 목요일, 경성
10. 1926년 10월 1일 금요일, 경성

작가 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