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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일의 예배, 노동

thytykihd 2024. 1. 25. 16:51


IVF스타일의 책같았는데 출판사가 넥서스크로스이다. 영어책 많이 나오는 출판사같다. 기독교사상이나 기독교세계사관을 이 세상에서 정립을 하고 싶은데 목사님들의 생각이나 설교는 논리나 근거도 없고 지금 시대를 반영하지 못하고 너무 뒤떨어져 있다. 요즘 교회도 무슨 비판만 하면 빨갱이라고 한다. 요즘 세상에 종북이 어디있는지 이해가 안 된다. 전부 민주주의자들인데말이다. 그 분들은 사상에 대한 정립이 없어서 흑백이론에 빠져 있나보다. 그래서 교회에 가서 설교는 듣지만 너무 편향적이고 일반화의 오류에 빠져있어서 듣기가 힘들다. 그래도 이 책은 성경학자이고 교수님이라서 깊은 성경적지식이나. 근거가 있어서 어떤 얘기를 하시는지 읽고 귀를 귀울여 보고 싶다. 항상 고민이 많고 어떻게 사는 것이 올바른 삶인지 모르겠는데 교회나 나라의 지도자들은 그런 방향을 제시해주지 못한다. 그래서 이 책을 꼭 읽고 싶어서 읽었다. 하나님의 뜻이나 말씀에 순종을 하고 싶지만 맹목적인 것은 따를 수 없다. 올바른 이유가 있고 근거가 있어야지 움직일 수 있는 것 같다. 노동이나 공부도 어쩌면 죄악의 결과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난공부하다가 병이 나고 욕심을 부리다가 몸이 상해서 노동에 대해서도 자신의 몸이 감당하지 못하면 쉼을 얻어야 하는 것 같다. 공부중독이나 일중독에 빠진 사람들도 어떤 만족이 없고 불만족을 채우기 위해서 하는 것 같다. 아담과 뱀에 대한 문화창출에 대한 얘기가 흥미로웠다. 성경을 요즘 관점에 맞춰서 설명을 해주는 것 같다. 광고주들이 소비를 하면 뭔가 큰 변화가 올거라는 꾐을 줘서 우리도 쇼핑중독에 빠지게 하는게 아닌지 그런 얘기는 정말 재미있는 것 같다. 소명이 뭔지 사실 아직도내 안에서 정립이 되어 있지 않은 것 같다. 성경신학자인 저자가 설득력있게 썼다고 하니까 노동에 대한 진정한 의미를 정립하고 싶었다. 그렇게 하고 세상에 나가는 것이 그리스도인으로서 세상에 매몰 안될 것 같다. 이 책으로 큐티를 하면서 읽었다. 책만 맹신한다고 비판을 받지만 책을 믿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어떤 결론이 있으면 근거와 이유를 들어서 책을 읽는 우리를 설득하기 때문이다. 그냥 믿어라, 그냥 맞다가 아니라 이러이러해서 맞다고 하기 때문에 그 얘기에 맞장구를 치는 것이다. 이 책은 아주 잘 쓰여진 책같다. 저자가 지성인이고 신학적으로 공부를 많이 해서 그런 것 같다. 이 책은 노동이 예배라는 이유를 성경적인 근거와 요즘 세상의 상황에 들어 맞는 이유들을 많이 댄 것 같다. 이 책의 조금 아쉬운 점은 책표지가 약간 더 두꺼웠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표자기 두꺼워야지 책을 볼 때 잡기가 편하다. 노동을 생각하면 막노동이나 공사판에서 일하는 것을 떠올리게 된다. 노동하면 노역이나 몸이 엄청 힘든 어떤 행위가 떠오 노동은 몸을 움직여 일을 함. 사람이 생활에 필요한 물자를 얻기 위하여 육체적 노력이나 정신적 노력을 들이는 행의를 말한다.​ 그래서 나중에 노동이 무엇인지,, 소명 직업이 무엇인지 알아가면 될 것 같다. 결혼은 소명일까,,,직업일까,,, 결혼은 소명이나 직업의 문제가 아니라 은혜의 선물, 곧 은사를 말한다. 결혼이나 독신은 모두 그에 해당하는 은혜의 선물이 필요하다. 이런 종류의 은혜는 그것이 무엇이든 직업이거나 소명이거나 일이거나 과업이 아니다. 바울은 인생에서 사람이 처한 사회적 지위가 어떠하든지 그 위치나 지위에서 얼마든지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다고 한다. 바울은 결혼이나 독신은 확정된 직업으로 보지 않는다. 이 부분은 종이 참된 그리그도인이 되기 위해서 자기의 신분을 바꿀 필요가 없다고 한다. 진 비이스는 루터파 전통을 따라서 가족은 모든 직업의 가장 큰 기초라고 한다. 한 사람이 어느 가정에서 출생하거나 입양되었다고 하는 것은 가족의 내부에서 일어난 일이고 그것을 소명이나 직업이라고 하지 않고 은혜의 선물이다. 결혼은 지상에서 윤택한 삶을 살기 위해서 존재하는 세상의 제도이다. 예수께서 제자들을 부르셨던 것처럼 특정한 경우 훨씬 더 중요한 과업을 위해서 자기 가족을 떠나야 할 때도 있다. 바울은 종말론적인 상황에서 남편과 아내는 땅에서 살 동안 임시적으로 관계라고 한다. 가정 일을 하나님 나라의 일보다 우선 순위에 두면 결국 가족을 우상 삼게 될 위험이 있다. 생활 속에서 밥먹는 일처럼 꼭 필요한 일을 직업이라고는 하지 않는다. 우리가 하는 일이 모두 선하거나 꼭 필요한 일이라고 해도 전부 소명이거나 직업이라고 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것을 한 개인의 노동이라고 하지 않는다. 마약밀매꾼이나 매춘부도 열심히 일을 하고 있고 벌이도 좋지만 이런 직업군을 하나님이 주신 직업도 소명도 아니다. 직업을 가질 때 이웃 사랑을 나타낼 수 있는가를 생각해봐야 한다. 만약 그 대답이 아니오라면 그것은 그저 사람의 일이거나 소명일 수는 없다. 그것은 그저 하는 일이거나 열심히 하는 일일뿐이다. 만일 이웃에게 해를 끼치고 사람들이 하나님과 가족과 타인과의 관계를 맺기 못하도록 파괴하며, 자신에게 떳떳하지 못한 일이라면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라고 허락하신 일이라고 할 수 없다.​ ​ 좋은 직업일수록 윤리 규범에 맞게 처신해야 하는 것 같다. 아무리 높은 자리에 가고 성공을 해도 청문회나 특검 정도에 나오는 것은 전혀 성공도 아니고 그냥 범죄자에 불과한 것 같다. 직업 윤리가 높다면 그런 일들도 없을 것 같은데 정말 안타깝다. 배관공들은 선서를 하지 않지만 불량품을 쓰지 않고 고객에게 실제보더 과도한 비용을 청구하기 위해 사실을 크게 부풀리지 않아야 한다. 소명받은 그리스도인이 일을 하면서 이 일을 이런 식으로 한 것이 과연 내 이웃을 사랑하라는 계명대로 하는 것인가를 스스로에게 질문을 해 봐야 한다. 또한 같은 행동이라도 직업에 따라서 그것이 윤리적이고 합법적인 것이 되어야 한다. 법을 잘알아서 법꾸라지처럼 돼서는 안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가치관은 세속 사회의 가치관과 견주었을 때 최상층에 있어야 한다. 기독교적인 사상과 세상의 세상이 충돌이 일어 났을 때 기독교적인 가치관을 따르라는 것이다. 그렇게 사니까 세상에서 살기가 너무 힘들다. 태생적으로 죄가 수반되거나 그리스도의 법을 어겨야 하는 직업은 그리스도인이 종사해서는 안된다. 비슷한 논리로 그리스도인은 카지노사업이나 담배제조업을 하면 안되는 것이다. 세월이 지나면서 우리의 직업도 바뀔 수가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항상 경청해야 한다. 직업이라는 측면에서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진 직무는 가장 큰 계명과 지상명령을 지키는 것이다. 이것이 직무 1순위이다. 이것에 더하여 의사, 변호사 ,사업가, 목사, 부모등 2차 소명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그런 것은 부차적인 소명이다. 1차 과업은 그리스도께서 지상에 오셔서 행하신 그 일을 하는 것이다. 구원과 치유 장차 올 그 나라의 복음을 이웃과 나누는 것이다. 이를 성취하는 과정에서 2차 소명은 과업과 제휴하거나 협력을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속성을 보면 예술가이시고 음악적인 영감이 넘치는 작곡가이시다. 하나님은 일종의 재즈가수 같기도 하시다고 한다. 시편이나 스바냐를 보면 하나님은 모든 음악을 구현할 줄 아시고 또한 공유하신다. 그리스도의 아름다움에 꽂히면 우리는 변화되고 또한 자유를 얻는다. 하나님은 우리를 명품으로 만들기 위해 최고의 강적으로 삼기 위해 자유를 주신것이기에 우리는 그 자유를 참되게 누려야 한다. 소명은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부여하시는 것이다. 직업은 그 소명에 우리가 반응할 때 발생하는 것이다. 직업은 우리가 소명에 기초하여 일을 하는 것이다. 부르셨다는 것과 구비해주신 것이다. 재능을 주시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바바라 브라운 테일러는 하나님께 어떤 직업을 가져야 하냐고 계속 물었을 때 네가 좋아하는 것은 무엇이라도 해라라고 다 자기의 것이니까 말이다. 인생을 사는 동안 무슨 일을 할 것인지는 자신이 결정하는 것이므로 무엇을 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하느냐가 문제이다. 하나님은 포괄적인 목적은 제시해주셨지만 자잘한 것은 거론조차 하지 않으셨다. 내가 의미 있는 삶을 원할 경우, 혼자 힘으로 목표를 정하면 된다. 우리의 하나님의 청지기이고 진정한 소명과 직업을 가지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음성에 경청해야 하고 말씀에 비춰서 적용을 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이 책을 보면서 느낀 것은 매일매일, 순간순간 코람데오의 시각으로 하나님을 의식하고 살아 가면서 주일만 하나님날이 아니라 평일도 하나님날이라는 것을 실천하면서 살아야 하는 것 같다
일과 직업, 노동과 소명, 휴식과 놀이 사이에서 갈등하는
그리스도인을 위한 벤 위더링턴 3세의 성경적 처방

우리는 깨어 있는 내내 일한다. 노동을 필요악 정도로 생각한다. 일해야 먹고 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조차 노동을 타락한 인간에게 부과된 가혹한 형벌 정도로 취급하는 것이다.

이 시대의 빼어난 성경신학자 벤 위더링턴 3세는 그렇지 않다고 일갈한다. 그는 일이 저주가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이며, 하나님과 함께 즐기는 놀이라고 ‘노동’의 개념을 바꾸어준다. 소명과 사역으로서의 노동 개념과 노동의 핵심 가치를, 성경 전체를 통찰하며 예리하고도 이해하기 쉽게 다루고 있다. 이제 살맛나게 일할 수 있다. 이 책을 통해 일이 예배이자 놀이가 될 것이다.


머리말 경고, 일하고 있으라 008

1부 노동의 유익
현 세상과 새 세상의 노동 026?| 일하시는 하나님과 그의 솜씨 031?|
노동과 휴식에 대한 잘못된 신학 038?| 노동에 담긴 소명 041?|
노동윤리의 최종 목적 044?| 노동과 세상에 대하여 048?|
노동은 천국을 몰고 온다 053?|

2부 직업으로서의 노동신학
종교개혁 이래 개인주의의 발전 058?| 루터, 섭리 그리고 두 개의 나라 061?|
이웃 봉사와 그리스도 섬김 069?| 소명에 대한 하나님 중심적 관점 077?|
무엇을 소명으로 여겨야 하는가? 081?| 그리스도인의 노동방법 085?|
윤리와 직업 088?| 예술로서의 노동, 노동으로서의 예술 092?|

3부 게으름뱅이와 느림보가 뒤섞인 세상
게으름이라는 죄 102?| 일중독에 빠진 사람들 113?|

4부 소명과 직업의 차이
소명과 직업 120

5부 사역으로서의 노동, 노동으로서의 사역
행위,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 136?| 사역으로서의 노동 143?|
말씀 사역이라는 노동 148?| 유급 노동과 불로소득 153?|

6부 문화 창출로서의 노동 : 크라우치의 관점에서 바라본 세상
그리스도는 문화를 배척하셨는가? 164?| 변혁과 문화 176?|
문화 창조하기 182?| 문화를 창조하는 나라 189?|
신앙의 토착화 193?| 문화적 인공물로서의 새 예루살렘 197?|
세상에 있지만 세상에 속하지 않는 200?| 문화를 바꾸기 위해서 203?|

7부 새로운 균형 : 노동과 신앙, 휴식, 놀이
믿음이냐 행위냐? 210?| 문제와 질병을 유발하는 노동 214?|
노동에 대한 문화적 신화, 소비는 소비를 낳고 217?|
일과 휴식 : 족함의 신학 225?| 놀이의 신학과 노동 233?|

맺음말 이 일을 맡았으니 그래서 246
주석 262